노먼 볼로그와 녹색혁명 이야기 (20세기 밀 수확량은 어떻게 증가했는가?)
20세기 후반 밀 수확량은 어떻게 증가 하였을까?
이 이야기는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일본의 밀 육종가 곤지로 이나주카 (Gonjiro Inazuka) 는 일본의 반왜성 (semi-dwarf) 야생 품종과 두개의 미국 밀 품종을 교배하여 노린 10 [小麦農林10号] 이라는 새로운 밀 품종을 개발합니다. 일본어로 노린은 ‘농림’ 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반왜성[半矮性]: 식물 육종에서 보통의 품종보다 줄기의 길이가 짧거나 키가 작지만 왜성처럼 극단적이지 않은 상태
Daruma 는 줄기가 짧은 일본 고유 품종이었고 박력분 밀 품종인 Fultz 와 강력분 밀 품종인 Turkey Red 는 1982년쯤 미국에서 일본으로 도입된 품종이었습니다. 이 Fultz 와 Turkey Red 는 일본 도쿄에 있는 니시가하라 중앙 농업연구소 에서 교배가 이루어 졌습니다. 1917년 Fultz 에서 분리된 Glassy Fultz 라는 계통이 만들어 졌고 이것은 일본 고유의 야생 품종인 Daruma 와 교배되어 Fultz-Daruma 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1924년에 Fultz-Daruma 는 Turkey Red 와 교배됩니다. 지속적인 계통육종을 통해 1935년 마침에 노린 10 이 탄생하게 됩니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곤지로 이나주카 에 대한 영화가 있습니다. 제목은 Norin Ten: A Gonjiro Inazuka Story 입니다.
당시 밀 품종들은 성인 키 만큼 큰 품종이 대부분이었고 비나 강풍이 오면 쉽게 도복이 되는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영화 글래디에디터 에서 역사 고증에 실패한 것들중에서 농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막시무스가 밀 밭을 걸으면서 손을 내려 밀 이삭을 만지면서 이동하는 모습입니다.이것은 역사 고증의 오류입니다. 로마시대 당시 밀의 초장 (草長, 작물의 키) 은 성인의 키 만큼 컸습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밀은 현재 시대의 반왜성 밀 품종 입니다.
노린 10은 Rht1 과 Rht2 유전자가 도입된 품종입니다. 이 유전자는 지난 60년 넘는 동안 밀의 수확량을 증가시켜왔습니다. Rht1 과 Rht2 는 밀의 초장을 60 ~110cm 까지 줄였습니다. Rht 유전자는 지베렐린에 대한 sensitivity 를 감소시켜 작물의 절간 (internode) 의 길이를 줄여 초장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노린 10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미국 농무성 USDA 의 밀 육종가 Salmon SD 가 일본 혼슈의 모리오카 농업 연구소를 방문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Salmon 은 노린 10 품종 샘플을 미국으로 가져가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 워싱턴 주립대 (Washington State University, WSU) 에서 노린 10 에 대한 연구가 시작됩니다. 1949년 WSU 의 Vogel 박사는 노린 10을 이용하여 여러가지 교배품종을 만들어 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Norin 10 × Baart 와 Norin 10 × Brevor 였습니다. 그리고 이 두 교배품종을 Vogel 박사는 멕시코 국제옥수수밀연구소(CIMMYT) 에서 밀 육종 연구를 하던 노먼 볼로그 (Norman Borlaug) 박사에게 전달되게 됩니다.
1952-53년 당시 CIMMYT 의 주 관심사는 도복 (lodging, 작물이 비 바람에 쓰러짐) 문제 였습니다. 당시 수확량 증가를 위해 과다하게 사용된 질소비료는 작물의 도복을 일으켰고 이는 수확량의 감소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당시 멕시코에 있던 노먼 볼로그 박사는 WSU 의 Vogel 박사에게 노린 10 계통 샘플을 요청하게 됩니다. 처음 노린 10 을 이용하여 품종을 개발하던 중 가장 큰 문제는 세대를 F3 까지 내렸을때 발생되는 모본계통의 녹병 (Rust) 문제였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1957년 부터 노먼 볼로그 박사는 Norin 10 × Brevor 계통에 집중해 나갑니다.
Norin 10 × Brevor 과 여러 멕시코 밀 품종을 교배해 나가면서 발생되는 문제점들은 무척 많았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웅성불임성 (male sterility, 부계 계통에서 꽃가루 발생이 낮아짐) 의 증가와 쪼글어드는 종자상태와 낮은 글루텐 함량, 그리고 줄기와 잎에서 발생되는 녹병 이었습니다.
노먼 볼로그 박사는 셔틀육종 (shuttle breeding program) 이라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는 밀 품종 육종은 한번은 멕시코에서 해발 2249m 의 고지대에, 다른 한번은 관개용 사막 (the irrigated desert, 뜨거운 사막 지대지만 관수가 가능한 곳) 에서 재배하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1년에 두세대를 진전시킬수 있는 육종방법입니다. 오늘날 그린하우스에서 이루어지는 speed-up 육종의 시초인 것입니다. 이렇게 대조적인 환경에 노출된 밀 육종 재료들을 통해 노먼 볼로그 박사는 밀의 병 저항성에 대한 더 광범위한 선발을 해 나갈수 있었습니다.
Vogel 박사로 부터 노린 10 계통을 받은지 10년째가 되는 1962년까지 노먼 볼로그 박사는 두개의 수확량이 높은 품종 Pitic 62 와 Penjamo 62 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계속 이어지는 품종 개발로 Siete Cerros 66 이라는 품종이 세상에 나오게 되고 이 품종은 700만 헥타르가 넘게 개발도상국 국가들에서 재배되게 됩니다. 비록 녹색혁명의 출발점은 멕시코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폭발력은 남아시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60년대 남아시아는 극도의 기근과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아시아의 과학자들과 정부들은 맥시코에서 개발된 반왜성 밀 품종 (high-yielding semi-dwarf) 을 본인들 지역에서 재배시험 평가 하였고 그들은 이 품종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1967년 파키스탄 정부는 42,000 톤의 노먼 볼로그가 개발한 반왜성 밀 품종들을 멕시코로 부터 수입합니다. 당시 품종별로는 Indus-66 (40,000 ton), MexiPak-65 (1,500 ton), Sonora-64 (200 ton), Inia-66 (20 ton) 이였고 당시 농업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종자 구매 였다고 합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의 밀 수확량의 증가는 전에는 찾아볼수 없는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1963년에서 1967년 단지 4년 동안 인도에서는 밀 수확량이 두배로 증가했고 밀 수입에 의존하던 이 국가들은 밀을 자급할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이 시기를 녹색혁명 (the Green Revolution) 이라고 부릅니다.
참고로 오늘날 인도는 녹색혁명전인 10만톤 밀 생산 국가에서 현재는 9천 9백만 톤의 밀을 생산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한국은 현재 2만 5천톤의 밀을 생산합니다).
노먼 볼로그는 이 공로를 인정 받아 197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반왜성 밀 품종 (high-yielding semi-dwarf) 은 어떻게 하여 이렇게 수확량을 증가시킬수 있었을까요? 핵심은 동화산물 (assimilates) 재할당의 결과입니다 (the reallocation of assimilates from vegetative to reproductive organs).
밀의 초장이 줄어들어 도복의 위험성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줄기가 줄어든 만큼 광합성 산물은 줄기에서 이삭 (spike) 으로 파티셔닝 되는 양이 더 증가하게 됩니다. 이는 이삭의 건물중 (dry weight)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밀의 생육과정을 구분해 보면 크게 개화기 전 (pre-anthesis), 개화기 후 (post-anthesis) 로 나눌수 있습니다. 개화기전에는 floret 이 발달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resource 가 중요합니다. 즉, 제대로 양분이 공급되지 못하면 floret 발달은 저해됩니다. 즉, 밀의 종자립수는 resource 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source limitation 이라고 부릅니다 (특정 형질이 source 에 의해 영향을 받아 제한 된다는 뜻).
위 사진은 밀의 생육과정에 있어서 stem elongation 기간이라고 부릅니다. 즉, 줄기가 신장되는 기간입니다. 겉보기에는 영양생장중인거 같지만 실제로는 floret 이 발달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즉, terminal spikelet 생성이 완료된 시점부터 stem elongation 기간이 시작된다고 부르는데 이 시기 부터는 floret 이 발달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사실 잎만 보이는 이 시기가 밀에 있어서는 생식생장 시기인 것입니다.
이 시기는 종자립수에 영향을 미치는 시기일 것입니다. 즉 최대한 많은 floret 이 발달되어 종자로 setting 되어야 되는 시기로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영양분은 floret 발달에 중요합니다. 비료를 뿌리더라도 이 시기에 뿌려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동화산물이 줄기에서 이삭으로의 파티셔닝이 증가되면 floret 발달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의 건물중도 증가되고 종자 setting 도 향상되어 종자립수가 증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밀 수확량은 증가하게 된 것입니다. 즉, 반왜성 품종을 통한 밀 수확량의 증가는 밀 종자립수의 증가에 기인합니다. 단순히 수확량이 증가하였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수확량의 구성요소가 증가하였는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증가된 종자립수에 균형을 맞추고자 (trade-off) 밀의 종자무게는 일정부분 감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정부분 종자무게를 감소시키면서 종자립수를 증가시키는 전략은 오늘날 밀 육종의 기본적 전략이기도 합니다.
Reference
Calderini, D.F. and Slafer, G.A., 1999. Has yield stability changed with genetic improvement of wheat yield?. Euphytica, 107(1), pp.51-59.
Slafer, G.A., 2003. Genetic basis of yield as viewed from a crop physiologist’s perspective. Annals of Applied Biology, 142(2), pp.117-128.
Fischer, R.A., 2007. Understanding the physiological basis of yield potential in wheat. The Journal of Agricultural Science, 145(2), p.99.
Álvaro, F., Royo, C., García del Moral, L.F. and Villegas, D., 2008. Grain filling and dry matter translocation responses to source–sink modifications in a historical series of durum wheat. Crop Science, 48(4), pp.1523-1531.
Lumpkin, T.A., 2015. How a gene from Japan revolutionized the world of wheat: CIMMYT’s quest for combining genes to mitigate threats to global food security. In Advances in wheat genetics: From genome to field (pp. 13-20). Springer, Tokyo.
4 thoughts on “노먼 볼로그와 녹색혁명 이야기 (20세기 밀 수확량은 어떻게 증가했는가?)”
잘 읽었습니다. 녹색혁명에 관해 많이 듣긴했지만 정확하게 뭔지 몰랐는데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일본에서 유독 반왜성 밀이 발생한 것인가요?
일본의 밀주산지가 훗카이도이던데 특별히 강풍이 많이 불어서 인가요? 아니면 약 5-6m이상 씩 내리는 강설량에서 눈의 묻혀서 겨울을 보내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인가요? 궁금하네요 ㅎㅎ
안녕하세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본에서 유독 반왜성 밀이 발생했다기 보단 일본에서 먼저 반왜성 밀을 육종했다는 것이 더 맞을것 같습니다. 사실 일본이 근대 농업에 기여한 바는 저희가 생각하는것 보다 훨씬 큽니다. 그리고 일본의 밀 주산지가 훗카이도인 것은 아마도 수확할 시점에 강우량이 적어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밀은 월동작물로 재배가 가능해서 겨울에 추운것이 1차적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어짜피 그 추운 기간동안에는 생장이 멈춰져 있으니깐요. 겨울이 추울수록 나중에 작물의 생장이 향상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겨울 이후의 날씨입니다. 특히 등숙기 기간에 비가 오면 등숙에 영향을 미쳐 종자 수확량과 품질이 낮아지게 됩니다. 예를들어, 11월에 겨울밀을 파종을 하고,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6~7월에 수확을 한다고 할 경우… 그 시점에 장마철이 되면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한국이 딱 그 사이클에 걸려 있는거죠. 눈에 묻혀서 생존에 유리하다는 말씀 또한 맞습니다. 어떤 연구결과에서는 눈에 밀 유묘가 덮혀 있으면 어느 정도 severe 한 냉해로 부터 보호가 된다고도 합니다. 혹시 연구자 이시라면 아래 논문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제가 포스팅한 대부분의 내용이 아래 논문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Lumpkin, T.A., 2015. How a gene from Japan revolutionized the world of wheat: CIMMYT’s quest for combining genes to mitigate threats to global food security. In Advances in wheat genetics: From genome to field (pp. 13-20). Springer, Tokyo.
앞으로도 계속 좋은 주제로 소통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우리나라의 앉은뱅이 밀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이 당시 식민지배 상황이라 우리의 이 유전자원을 활용하여 반왜성밀을 육종했을 수도 있겠네요.
최근 정부에서 밀 자급률 5%를 목표로한 밀자급계획을 발표했던데 기후적인 약점을 극복할 방법이 꼭 필요하겠네요.
감사합니다.
이 말씀도 맞습니다. 많은 논문들에서 반왜성 유전자의 기원을 한국에서 찾습니다. 3~4세기경 반왜성 밀 품종이 한국에 존재했었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 일본 반왜성 품종의 시초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한국에서 먼저 밝혔고 아래 논문이 현재 대부분의 반왜성 유전자의 기원을 설명하는 논문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게 심포지움 프리시딩으로 되어 있어서 전체를 읽어보고 싶어도 자료를 찾기가 힘듭니다.
Cho CH, Kyu HO, Lee SH (1993) Origin, dissemination and utilization of semi dwarf genes in Korea. In: Miller TE, Koebner RMD (eds) Proceedings of 7th international wheat genetic sym- posium, Bath Press, Bath, pp 223–231
대신 아래 논문을 소개해 드립니다. 이 논문에서 “Origin of Rht Genes in Wheat” 부분에서 위 Cho et al. (1993) 를 인용하면서 한국에서 반왜성 밀 품종이 존재했었고 그것이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Borojevic, K. and Borojevic, K., 2005. The transfer and history of “reduced height genes”(Rht) in wheat from Japan to Europe. Journal of Heredity, 96(4), pp.455-459.